실험과 이론
아마 이 누추한 곳이나 ExtraD님의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시는 분이라면 거대 강입자 가속기, 영어로 Large Hadron Collider -- 줄여서 LHC에 대한 이야기를 한두번 보셨을 것이다. 참고로 신의 입자라는 제목으로 고등과학원 모 박사님께서 LHC와 그 전망에 대해 5회 연속 기획 중 첫 번째로 쓰신 글인데... 본인의 사진이 너무 뽀샵 처리되어 실물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을 자칫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아니라면 아주 쉽게 잘 쓴 기사. 1993년인가 클린턴 행정부 때 미국 텍사스에 건설 중이던 초전도 초거대 충돌기 (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SSC) 계획이 취소된 이래 입자물리학은 실험은 중지된 채 오로지 이론만이 활발하게 논의되어 온 터였다. (라고 쓰고 갈피를 못잡고 삽질을 거듭하면서 헤매고 있었다고 읽으면 당신은 센스쟁이) 아마 블로그 주인장이 순수하게 입자 이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좀 박쥐끼와 똘끼 및 삐딱선이 있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지만, 최근 1-2년 동안 어디 학회를 가보면 입자 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LHC에 대해 가지는 기대라는 것은 과장 좀 보태서 거의 신앙의 수준이다. 그냥 넋놓고 듣다보면 거의 LHC만 건설되면 인류는 우주의 비밀을 풀고 가장 근본적인 이론을 발견하거나 적어도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으며 식량 문제도 인구 문제도 환경 문제도 해결되고 미쿡의 흰집 원숭이도 물러나고 그 원숭이의 애견을 자처하는 푸른 기와집의 쥐새끼도 쫓겨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까지 들 정도.

사실 이런 어찌 보면 좀 눈꼴 시려운 모습도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닌 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20세기 초 물리학의 황금기, 소위 `기적의 해'라는 1905년,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뿐만 아니라 다른 중요한 세 편의 논문)을 발표한 때 이후 -- 사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막스 플랑크가 거의 기적과도 같은 통찰인지 행운인지로 흑체복사 공식을 출판한 1901년 이후 -- 양자역학이 완성될 때까지의 약 4반세기는 초기에 톰슨과 러더퍼드 같은 캐번디시 패밀리로 대표되는 원자물리학 실험에 힘입은 바가 크다. 실험 물리학자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당시로서는 최선의 정확도를 가진 실험 데이타를 수없이 뿌려놓았고, 게으른 이론가들은 그 결과를 등대 삼아서 이론을 만들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암벽 등반을 할 때 선두에 선 사람이 고생고생해가면서 발판을 마련해놓으면 그 뒤에 따라오는 사람은 좀 더 편하게 그 발판을 밟아가면서 오르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그런데 실험이란게 그냥 펜대만 굴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발전된 기술도 필요하고, 부지를 선정하고 건설하고 할 때 정치도 해야하고, 무엇보다도 돈도 필요하다보니 어느 규모 이상으로 커지게 되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농담 한 마디. 어떤 이론물리학자가 총장에게 다음 해 연구경비로 컴퓨터를 기안해 올리자 구두쇠 총장 투덜거리기를 "아니 왜 이런걸 요구하는거야... 수학자들 보라고. 이 사람들 종이와 연필과 쓰레기통밖에 주문하지 않았잖아? 철학자들은 심지어 쓰레기통도 필요없다는군!") 그러니 실험물리학자들이 조금씩 뒤로 처지게 되어 돈 안드는(...) 이론물리학자들이 앞으로 나서게 되니 이 작자들 전혀 믿을만한 길잡이가 아닌 거라. 거기에 환원주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자연의 법칙은 합의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론의 진위 여부는 오로지 실험만이 가려줄 수 있는 터이다. 그러니 입자 이론하는 사람들이 4반세기만의 실험에 환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그런데 요즈음 천체물리학/천문학 및 우주론 (여기서 입자 없이 어떻게 우주론이 되냐는 당신은 2MB) 관련된 학회를 다니다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 바닥의 관측 프로젝트들이 줄줄줄 나오는거라. 지금 입자이론 및 초끈이론을 하면서 가끔 우주론에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특히 초끈이론 하는 몇몇 사람들의 설레발과 오버는 듣는 사람이 쪽팔릴 정도다) 거의 전적으로 WMAP 실험 결과에만 목을 매다는 것만으로 모자라 (가끔씩 1998년의 초신성 관측 결과도 언급하기는 한다) WMAP 킹왕짱 플랑크 하악하악 하는 것과는 달리 플랑크나 WMAP은 수없이 많은 프로젝트 중 하나일 뿐이다. 단적으로 NASA에서 짤리지 않고(...) 살아남은 암흑 에너지 관측 위성 프로젝트라던가, LSS를 측정하는 유럽 우주국의 유클리드 같은 인공위성 계획 뿐만 아니라 페루, 남극, 하와이 등등에서 행해지고 계획 중인 여러 가지 망원경 등등. 아마도 이론과 실험이 나란히 갈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시기인 것 같기도 하다. 결론은 이럴 때 한 건 올려야 한다는 거. (어라?)
by 구도의길 | 2008/07/10 16:25 | Inside the universe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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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루이 at 2008/07/10 18:26
'특히 초끈이론 하는 몇몇 사람들의 설레발과 오버'라면 누구를 말하는 건지요? 알려주신다면...
Commented by 구도의길 at 2008/07/11 01:34
일단 오해를 피하기 위해 언급해두자면, 저런 양반들이 형편없는 학자라거나 그런건 아니라는 거죠. 단지 아직 갈 길이 먼데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종점에 다다를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대한 삐딱선이랄까. 뭐 헨* 타* 같은 양반이 좀 그렇더군요. 논가우시아니티가 스트링의 미래라니 어쩌라고?
Commented by ExtraD at 2008/07/10 20:54
어떻게 입자 없이 우주론이 되나요?
Commented by 구도의길 at 2008/07/11 01:36
엄훠 이로써 당신은 2MB♡... 가 아니라 -_- 짐 피블스나 마틴 리즈를 아무도 입자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지만 본좌급 cosmologist라고 부르는데 아무도 주저하지 않는다면 될까요.
Commented by 루이 at 2008/07/10 22:21
무식한 척, "우주론은 고전장론으로 다 되는 것 아닌가요?", "양자역학은 전혀 몰라도 되는 것 아닌가요?"
Commented by 구도의길 at 2008/07/11 01:38
까놓고 이야기해서 가우시안 랜덤 필드만 깔려있으면 되니까요. 그 뒤로 가면 어떤 의미로는 양자역학 따위-_-보다는 코딩 실력이 더 중요하달까.
Commented by cosmo at 2008/07/11 01:04
ExD// '최초의 3분'간 이후면 되지 않을까요? ^^;;
루이// 아마도... 칼XX 할머니를 지칭하는게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만..
구도// 아~~ 나 지금 일어나 버렸어요. ㅠ.ㅠ 누워서 알람이 울리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알람이 오후 8시반으로 맞춰져 있었...ㅠ.ㅠ
Commented by 구도의길 at 2008/07/11 01:38
게으르도다.
Commented by Leonardo at 2008/07/11 02:21
실험이 중요하죠. 결과로써 증명을 안해주면 한낯 이론에 불과하니깐요.

우주론 따위... 전 몰라요...
드래곤은 언제 나오냐능...;;;
Commented by 구도의길 at 2008/07/15 12:59
하지만 사실 실험이 이론에 비해 언제나 절대적인 우위에 서있는 것도 아닙니다. 실험하는 사람들도 이론의 인도를 받는 일이 자주 있지요. 그리고 드래곤은 아마 지평선 너머에 있을거라능.
Commented by quantum at 2008/07/11 07:08
입자물리 하는 사람들은 '오버'할 만 합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새로운 실험 데이터 같은게 없었으니까... 그래도 '과학'을 한다는 사람들이라..
Commented by 구도의길 at 2008/07/15 13:00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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